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역질나는 사악함 (문단 편집) == [[칠흑의 의지]]와의 차이 == [[칠흑의 의지]]의 경우에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필요에 의해서는 살인까지도 불사하지만, '자신도 댓가를 치룰 각오가 되어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사악함은 약자를 멸시하는 사상이나, 칠흑의 의지는 약자 강자를 구분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을 의미한다. 또한 사악함은 오직 결과만 좋으면 다고, 칠흑의 의지는 사전 과정을 극도로 의식한다. 칠흑의 의지는 [[투지]]를 상징하지만, 사악함은 [[인과]]만을 상징한다. 또한 사악함은 스스로 입장에서 자신의 노력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고 싶지 않고 오직 목표를 간단하게 가로채고자 한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칠흑의 의지]]는 상대의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뺏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 역시 상대에 의해 언제든 뺏길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미네쿠라 카즈야 作 《[[최유기]]》에도 비슷한 대사가 등장한다. "사람을 죽이며 사는 놈은 동시에 자신이 죽임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돼. 그게 [[인과응보]]라는 거다." (人を殺して生きる者は同時に自分が殺される覚悟を持たなきゃならん それが因果応報ってモンだ) 또한 이 대사 뒤에는 또 하나의 말이 붙는다. "그러니 이 세상은 '''악이든 선이든 마지막에 남는 건 살아가려는 의지가 강한 녀석'''이다." (だからこの世は悪だろうが何だろうが 最後に残るのは生きる意志の強い奴だ)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나온 표현이지만, 칠흑의 의지에 대한 나름의 비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칠흑의 의지를 지닌 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의 목숨을 뺏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나, 반대로 '자기 자신의 목숨'도 판돈으로 올리는 자들을 의미한다. 반대로 '구역질나는 사악함'은 상대의 목숨을 뺏는데 주저함이 없으나, 반대로 그런 행동에서 자기자신의 목숨을 판돈에 올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구역질나는 사악함을 지닌 자들은 철저한 [[암습]]이나 [[기습]] 혹은 상대적인 약자에게 힘을 발휘하고, 강자를 피하려고 하지만, 칠흑의 의지는 그 동기가 '개인의 욕망의 충족'이지만, 그것을 약자나 저항하지 못하는 자들에게서 갈취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강자건 약자건 일방적인 '기습'이 아닌, 상대와 마주보는 [[결투]]를 통해 쟁취하는 것에 가깝다. 즉, [[칠흑의 의지]]와 '구역질나는 사악함'은 동기는 '개인의 욕망'으로 일치하지만,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행동의 단계에선 정 반대되는 모습을 띄는 셈이다. 칠흑의 의지가 구역질나는 사악함에서 파생된 거라 생각할수도 있으나, 칠흑의 의지는 누구나도 가질 수 있는 투지 이상을 겸할 경우에 발휘되는 전투의 본성이 된다. 즉, 구역질나는 사악함은 천성에서 비롯되고, 칠흑의 의지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본능인 것이다. 하지만 칠흑의 의지와 구역질나는 사악함은 결국 '자신의 목표를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감수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분모가 분명 존재한다. 황금의 정신이 자발적으로 잔혹한 칠흑의 의지를 내비치는 경우도, 구역질나는 사악함이 어떤 순간에 칠흑의 의지에 속하는 희생정신을 보이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면에서 칠흑의 의지를 황금의 정신과 구역질나는 사악함 사이에 존재하는 개념으로 보는 해석 역시도 그리 틀리지 않다. 실제로 칠흑의 의지를 가졌던 [[죠니 죠스타]]의 [[데드맨즈 커브|최후]]를 생각해 본다면 칠흑의 의지를 가진 자는 언제고 한 끗만 잘못 나가도 사악함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